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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뭘 배웠니? 종일 놀다왔어요(경향신문 매거진X 200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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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랑방 작성일08-03-26 18:03 조회1,65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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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뭘배웠니? 종일놀다왔어요
경향신문 매거진X 2000년 8월 31일

예배당 한쪽에 꾸민 교실. 벽을 털어 큰 창을 냈다. 앞산과 논밭, 연못이 한눈에 보인다. 장난꾸러기, 심술꾸러기, 잠꾸러기... 26명의꾸러기들. 1주일에 한번 체험 나들이. 경찰서, 은행, 신문사 등 안가본 곳이 없다. 학교 옆 작은밭. 씨뿌리고 수확하고 김장 담그기. 하루종일 즐겁게 노는 게 공부다.

▶ 취학전 아이들의 대안학교
포천 ‘꾸러기 학교’
글 조현석ㆍ사진 권호욱 기자

- 자연에서 배운다
“자 오늘은 칡넝쿨로 안경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요.”선생님 말에 우리 꾸러기들은 “네 좋아요”“야 신난다”했어요. 산으로 발을 옮기는 선생님 뒤를 따라갔지요. 오솔길 지나 원두막위에 먼저 앉은 선생님 손에는 어느새 칡넝쿨이 있었어요. “자 둥글게 안경테를 두 개 만들어 서로 잇고 다른 넝쿨로 다리도 두 개 만들면 멋진 안경이 되지요.”선생님의 시범을 본 우리 꾸러기들은 바로 옆 숲으로 달려가 칡넝쿨을 끊었어요. 고사리 손으로 ‘칡안경’을 만들어 재빠르게 쓰고는 서로 자기것이 멋있다며 한껏 뻐기기도 했지요.

선생님들은 우리를 ‘꾸러기’라고 부르죠, 장난꾸러기ㆍ심술꾸러기ㆍ욕심꾸러기ㆍ잠꾸러기ㆍㆍㆍ등등. 초등학교에 들어가지 않은 우리들의 사랑스런 모습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말이래요. 우리 꾸러기학교는 푸른 나무들이 많은 산으로 둘러싸인 작은 예배당 안에 있어요. 교실로 쓰이는 예배당 한쪽은 큰 유리창이에요. 높은 앞산과 논과들, 그리고 작은 연못 등이 한눈에 들어와요. 은은한 햇살이 들어와 형광등이 필요없는 교실이에요. 한여름 따가운 햇살이 싫은 대여섯명의 꾸러기들은 타원형 탁자에 배를 깔고 열심히 색종이 접기를 해요. 바로 옆에서는 나무시소를 타고 놀기도 하고 각양각색의 블록으로 배와 비행기 등을 만들기도 해요.

가끔 비가 오면 우산을 쓰고 앞마당으로 나가기도 해요. 불어난 물이 넘쳐흐르는 앞마당에서 흙을 모아댐을 만들기도 하고 종이배를 접어 띄우기도 해요. 장대처럼 내리는 빗줄기를 뚫고 신나게 자전거를 타기도 하지요. 우리 26명의 꾸러기들이 흩어져 노는 곳곳에 늘 선생님들이 있지만 그저 바라보기만 해요. ‘하지 말아라’ ‘그러면 안돼’라는 말은 하지 않지요. 위험하게 놀지만 않는다면요.

- 놀고 먹고 자기만 해요
“오늘은 학교에서 무얼 배웠니?” “하루 종일 놀고, 먹고, 자고 또 먹고, 놀고 왔어” “아니 시간표에는 여러 가지가 있던데?” “아냐 선생님한테 물어봐, 진짜 먹고, 놀고, 자다 왔단 말이야.”

처음 꾸러기학교에 보낸 엄마가 며칠간 물어본 말이에요. 다른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처럼 오늘은 노래와 무용을 배웠다고 거짓말을 할 수는 없잖아요. 사실 아무것도 배우지 않았으니까요. 선생님들은 오전과 오후에 ‘오늘은 숫자에 대해, 인사하는 법에 대해 배우자’고 말은 해요. 하지만 배우기 싫고 놀고 싶으면 밖으로 나가도 돼요. 우리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 하고 놀아요.

다른 유치원에서 하는 한글 배우기, 덧셈ㆍ뺄셈 등 수 익히기 등도 억지로 가르치지 않아요. 하지만 제가 ‘책은 어떻게 만들어져요’ 라고 물으면 저를 앞에 앉힌 선생님은 아주 자세하게 가르치기 시작하죠. 그 외 시간에는 그저 즐겁게 놀아요. 선생님들은 자주 우리 꾸러기들을 안아 주며 “사랑해”라는 말을 하죠. 우리들이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게 하고 또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한다는 거예요. 꾸러기끼리 일어나는 사소한 다툼도 그대로 놔둬요. 갑갑해서 우리끼리 알아서 화해하고 잘 지낸다나요.

제 주위에는 노래 잘하는 꾸러기, 어른 뺨칠 만큼 말 잘하는 꾸러기, 모래 장난 잘하는 꾸러기 등등 장기를 가진 아이들이 많아요. 선배중에는 졸업할 때까지 한글을 쓸 줄 모르는 꾸러기도 있었대요. 하지만 자전거 빨리타기, 종이접기 등은 잘 했다나 봐요. 꾸러기학교 1회 졸업생 중에는 초등하교 전교회장을 하거나 중학교 입학때 장학금을 받고 들어간 선배도 있다고 선생님들이 말해 줬어요

- 김장도 맛나게 담가요.
우리들은 1주일에 한번 꼭 체험나들이를 가요. 우리는 이 시간을 손꼽아 기다리죠. 가장 재미있는 놀이이고 학습이에요. 선생님들이 “이번에 신문사에 가면 어떨까”해도 우리가 회의를 해서 “놀이공원에 가요”하면 우리 의견을 존중해 줘요. 우리의 호기심을 풀어주고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한 견학이기 때문이죠.

지금까지 많은 곳을 다녔어요. 경찰서에서는 경찰아저씨들이 하는 일을 보고 듣고 사무실 곳곳을 쫒아다녔죠. 은행에 가서는 통장을 만들고 온라인 송금도 직접 해봤어요. 신문사ㆍ방송국도 가서 신문과 방송 프로그램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보기도 했고요.

어느 비오는 날에는 장화를 신고 국회의원들이 일하는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가기도 했지요. 뿐만 아니라 인형극과 연극, 전시회장에도 갔고요. 이천 도자기촌에서는 울퉁불퉁 멋대로 도자기를 만들어 보기도 했어요. 이젠 맛있는 포도밭에도 갈 거래요.

우리 꾸러기학교 옆에는 작은 밭이 하나 있어요. 꾸러기 밭이라고 부르는 이곳에 우리는 여러 농작물씨를 뿌렸어요. 새싹이 나고 하루하루 가다르게 자라는 농작물을 관찰하죠. 밭갈고 씨 뿌리는 것부터 잡풀뽑기, 거름주기, 수확하기 등 모두 우리가 해요. 날이 너무 뜨거울 때 가끔 선생님들이 돕기도 하지만, 오이ㆍ고추ㆍ상추 등 우리가 가꾼 채소가 점심 식탁에 오를 때 우리는 환호성을 질러요.

우리가 벌이는 행사중 가장 큰 것은 ‘김장 담그기’예요. 배추ㆍ열무ㆍ고추ㆍ무ㆍ쑥갓 등 여러 농작물을 심고 1주일에 한번씩 손을 봐줘요. ‘이젠 수확해도 되겠다’는 날에는 꾸러기의 어머니들도 앞치마를 두르고 오시죠.

배추, 무 씻고 절이기, 무채 썰기, 속 만들기 등 어머니들의 일을 지켜 보면서 우리는 즐거워해요. 그 상큼한 김치가 점심 식탁에 오르면 심각한 표정으로 매운 김치 맛을 보기고 하지요. 하지만 모두 “맛이 있다”고 하지 “맛이 없다”는 말은 하지 않아요. 우리 꾸러기들도 자신이 흘린 땀의 대가를 아는가봐요.
chsuk@kyunghyang.com


초등학교 교사출신 목사부인이92년설립

97년 서울서포천으로옮겨

경기포천군 소흘읍 무림리의 ‘꾸러기학교’는 1992년 4월 세워졌다. 자연과 함께 할 수 있는 포천으로 이사오기 전인 97년 4월까지는 서울 종로구 종로4가에 있었다. 새문안교회 부목사였던 정태일씨가 세운 ‘사랑방교회’안에 부인 이월영씨(47)가 학교를 만든 것. 인천교대를 졸업하고 초등학교 선생을 했던 이씨가 교장을 맡고 있다.
꾸러기학교의 자랑거리는 많다. 종로 시절에는 교육비가 없었다. 정확히는 ‘있었다’고 해야 맞는다. 처음에는 무기명으로 액수를 기록하지 않고, 형편껏 예배시간에 헌금함에 모았다. 이런 모금도 꾸러기학교의 요청이 있은 후에만 이루어졌다. 이 ‘무언의 약속’은 대부분의 꾸러기들이 사랑방교회 교인들 자녀였기에 가능했다. 그런데 교회의 이전으로 교회의 학교운영비 보조가 불가능해졌다. 꾸러기학교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포천에서 다시 시작하는데 어려움이 생긴 것. 그래서 이사오던 해. 꾸러기들을 모집할 때 부모들과 먼저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부모님들의 합의 아래 월15만원의 교육비가 생겼다.
또 하나의 자랑은 식사당번을 맡는 부모님들. 점심과 오전ㆍ오후 두 번의 간식을 위해 26명의 꾸러기 부모들은 한달에 한번씩 돌아가며 이를 준비해 준다. 매일 먹는 형식적인 점심과 간식으로 비칠 수 있는 것을 ‘엄마의 사랑과 정성’으로 먹이고 싶은 교장선생님의 바람 때문이다. 처음에는 시간이 없다는 부모들의 반대가 심했다. 하지만 지금은 여러 꾸러기들이 식사시간을 기다릴 정도가 되었다. 어떤 엄마는 토속적인 분위기로, 어떤 엄마는 최신식 요리를 해준다. 직장에 하루 휴가를 낸 어떤 아빠는 자가용에 가득 요리재료를 실고와 행주치마를 두른채 요리를 한다.
이교장은 “어른들의 손과 생각이 다가가지 않을수록 아이들은 잘 자란다”며 부모님들이 전폭적인 믿음과지지 없이는 이루어 질 수 없는 교육이라 항상 조심스럽지만 늘 믿고 따라주는 부모들이 고맙다“고 말했다.

<경향신문21매건진X 책마을 배움마당중에서 2000년 8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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