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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서3: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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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명해 작성일08-10-17 21:19 조회1,56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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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아가서3:6-5:1

아가서는 문학형태가 시가서입니다. 이것은 역사서나 서간문과 같이 사실을 다루는 것이 아니고, 문학적인, 시적인 표현이므로 본문 속에서 문자 자체에 얽매이기보다는 비유의 의미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아가서는 솔로몬 왕과 술람미 여인의 사랑을 노래한 것으로서 겉으로 보기에는 남녀의 사랑을 노래하고 있지만 의미적으로는 예수그리스도와 성도의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문단을 나누어 보겠습니다.
1문단 (3:6-11) , 결혼하기 위해 등장하는 신랑
2문단 (4:1-15) , 아름다운 나의 신부여!
ⓐ (4:1-7) 아름다운 그대
ⓑ (4:8-15) 나를 즐겁게 하는 나의 신부
3문단 (4:16-5:1) 신랑과 신부의 사랑.
문단별로 어떤 내용들이 흘러 가고 있는지 알아 보겠습니다.
1문단(3:6-11)에서 어떤 주제가 다루어지고 있나요?
먼저 중심단어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1) 솔로몬 왕 - 6번
6절: 저 사람
7절: 솔로몬, 그
9절: 솔로몬 왕
11절: 그, 그
2) 냄새 풍기며 - 6절에 두 번
3) 가마 - 3번
4) 용사 60명 - 4번
7절 - 용사 예순 명
8절 - 모두들, 군인들, 저마다
5) 예루살렘 아가씨들아(10절)
시온의 딸들아(11절)
우리는 1문단의 중심단어들을 모아서 간단히 정리해 볼 때,
대략의 내용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신랑되신 왕이 등장할 때 향내를 풍기며 오고 있는데,
많은 군사의 호위를 받으며 가마를 타고 오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그 장면을 지켜보는 둘러리들, 즉 예루살렘의 아가씨들도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문단에서 신랑은 누구를 의미할까요?
이 신랑은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신부된 성도들과 결혼하기 위해 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신랑되신 그리스도와 진실로 결혼했습니까?
2문단에서 어떤 주제들이 다루어지고 있나요?
2문단은 두 부분으로 나누었는데, 전반부(1-7절)/후반부(8-15절)입니다.

먼저 전반부에 해당하는 (1-7)절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이 부분의 중심단어들은 어떤 것들이 있나요?
1) 나의 사랑, 그대 - 같은 말로 여길 때 - 11번
2) 아름다워라 : 3번
각 절에 아름답다라고 직접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아름다움을 표현한 것을 같은 말로 여길 때 “아름다워라”는 의미적으로 13번에 해당합니다.
cf: 1절 - 눈 : 비둘기 같고
머리채: 길르앗 비탈을 내려오는 염소떼같고
2절 - 이 : 털을 깎으려고 목욕하고 나오는 암양 떼같고
3절 - 입술: 붉은 실 같고
볼 : 반으로 쪼개 놓은 석류같고
4절 - 목 : 무기를 두려고 만든 다윗의 망대
5절 - 가슴: 한 쌍의 사슴같고
쌍둥이 노루 같다.
7절 - 흠 잡을 데가 없다.
2문단은 결혼식을 한 신랑이 신부의 모습을 보고 극찬을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특히 2문단의 전반부인 (1-7)절 부분에서
신랑은 신부의 외모를 구체적으로 비유를 들어가며 가장 아름다운 말로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신랑이 자기의 아내로 맞이한 신부를 보며 너무 아름답다고 노래하고 있는데,
이것은 객관적인 미의 기준으로 표현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신랑이 자기의 신부를 주관적으로 아름답다고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아가서 서두 1장 5-6절에 보면
이 여인은 피부가 검게 그을린 모습이고
자신의 아름다운 몸을 위해 단장하던 여인이기보다는 포도원에서 태양 아래 열심히 일하던 여인으로 객관적으로는 외적으로 그렇게 아름다운 여인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신랑이 자기의 신부를 주관적으로 아름답다고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신랑이 보기에 신부는 아름다운 것입니다.

신랑이 주관적으로 신부를 아름답다고 노래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신랑되신 그리스도가 신부된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사랑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고운 모습도 마음도 없고 태양에 검게 그을린 술람미 여인같이 볼 품 없을지라도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보시기에는 그렇게 아름답고 사랑스럽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신랑 삼으신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아름답게 여기시고 사랑스러워하시는 신부라는 것을 얼마나 알고 계시며 느끼고 있습니까?
그리스도는 여러분을 섬세하게 바라보시며
아름답게 여기시고 사랑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그 사랑에 민감해야겠습니다.
우리가 그 사랑을 받는 것을 진실로 깨닫는 것이 왜 중요할까요?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 됩니다.
만물의 주인이신 그 분이 나를 그렇게 귀히 여기고 사랑하신다는 것을 안다면
겁날 것이 없고, 당당하고, 승리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거장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었습니다.
롬8:35,“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곤고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협입니까? 또는 칼입니까?
37,“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일에서 우리를 사랑하여 주신 그분을 힘입어서 이기도고 남 습니다.”
38,“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들도, 권세자들도, 현재 일도, 장래 일도, 능력 도,
39,“높음도, 깊음도 그 밖에 어떤 피조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할 이유를 바울은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살게 될 때 우리는 로마서 8장 35절 이하의 말씀과 같이 어떤 경우에서도 생명력있게 담대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사랑을 받는 삶이 중요합니다.
그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2문단 후반부인 (4:8-15)절에서는 어떤 내용들이 흘러가고 있을까요?
먼저 중심단어를 알아보겠습니다.
표현에 있어서 눈에 띄는 변화가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2문단 전반부에서 “나의 사랑” 또는 “그대”라고 표현하던 것을 (8-15)절의 후반부 에서는 “나의 누이, 나의 신부”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런 용어의 변화는 왜 있을까요?
신랑이 결혼 후에 신부를 더 친근히 부르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1) 나의 누이, 나의 신부/ 그대 - 16번
2) 오너라 - 4번(8절)
3) 향기 - 7번(10절, 11절, 14절)
4) 사랑 - 2번(10절)
5) 주격의 ‘나’ - 3번(9절, 10절)
중요구절은 무엇이 있을까요?
9절에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 2번
10절에 나를 즐겁게 한다. - 1번
2문단의 후반부의 중심단어들을 통해 어떤 내용이 흘러가고 있음을 알 수 있을까요?
신부의 사랑과 향기 때문에 신랑이 마음을 빼앗길 뿐 아니라,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

2문단 후반부의 내용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들어 있나요?
8절에서,
신랑은 ‘오너라, 오너라’하며 신부에게 좀 더 가까이 오라고 청합니다.
8절부터 신랑은 ‘나의 사랑’이라든가 ‘그대’라는 호칭에서 ‘나의 누이 나의 신부’라는 칭 호로 신부를 부르고 있습니다. 좀 더 친밀함이 느껴집니다.
9절에서
(1-7)절에서는 신부의 외모의 아름다움만을 노래하고 있는 것과 달리 9절에서는 신랑이 마음을 빼앗기고 있습니다.
마음을 빼앗기는 이유가 9절에서도 외모때문이기도 하지만(눈짓, 목에 걸린 구슬 목걸이 때문에)
(10-11)절에서 보면
신부의 달콤한 사랑과 신부의 몸에서 풍기는 그 향내때문입니다.
신랑은 신부의 외모도 아름다웠지만, 신부에게 더 가까이 가 보니 신부는 사랑과 향기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신부는 외모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내적으로도 사랑과 향기로운 인격을 가진 자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12절에서 보면
신랑은 신부를 문 잠긴 동산,
덮어 놓은 우물
막아 버린 샘이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아무도 열어 보지 않은 동산이요, 우물이요, 샘이라는 것입니다.
즉 더럽혀지지 않고 순결을 간직하고 있는 정결하고 고결한 신부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귀한 모습입니까?
그런데 그 동산은 어떤 모습입니까?
(13-15)절에 보면
온갖 맛있는 과일이 있고
온갖 향기나는 꽃과 나무로 가득하며
생수가 솟는 샘이 있는 동산입니다.
그 동산은 순결만을 간직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온갖 과일과 꽃과 샘이 있는
갖출 것을 다 갖춘 동산입니다.
그러면 (12-15)절에 나오는 내용을 정리하면 무슨 의미일까요?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신부의 모습을 감탄했던 신랑은
좀 더 가까이에서 신부를 대해 보니
그는 외모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사랑과 향기를 가진 자이고
순결과 좋은 과실과 같은 아름다운 인격을 가진 자임을 알고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 것입니다.
2문단의 후반부 즉, (8-15)절의 내용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전반부(4:1-7)절에서 신랑은 신부의 외모만을 보고 감탄하고 있지만
후반부(4:8-15)절에서 신랑은 신부의 외모만이 아니라 내면적인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 앗기고 있습니다. 전반부에서 신랑은 마음을 빼앗기는 모습은 아닙니다. 단지 감탄할 뿐 입니다. 그러나 후반부에서 신랑은 마음을 빼앗기고 있습니다.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신랑되신 주님을 즐겁게 해 드리기 위해 우리는 어떤 자세가 필요할까요?
그리스도를 신랑 삼아 그의 신부가 되는 일도 중요하지만,
우리는 내면적으로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향기로운 삶, 사랑을 행하는 삶. 거룩한 삶, 행함이 있는 믿음을 통해 드리는 온갖 열매들을 드리는 삶이 있어야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음을 알게 됩니다.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삶은 어떤 삶일까요?
1) 우리의 삶속에서 주님만 자랑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어떤 것을 자랑거리로 삼고 있습니까?
외모, 학벌, 집안, 경력...
아니면
교회에 오래 다닌 것을 자랑하지는 않습니까?
내가 좋은 교회에 속한 것을 자랑거리로 삼고 있지는 않습니까?
시 20:7, “어떤 이는 전차를 자랑하고
어떤 이는 기마를 자랑하지만
우리는 주 우리 하나님의 이름만을 자랑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 본질되신 그리스도를 자랑하기보다 비본질적인 것을 자랑거리 고 삼고 있다면 그것은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삶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2) 단지 교회생활만을 성실히 하는 삶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그런 삶은 물론이고, 개인적으로, 교회적으로 주님께서 때를 따라 내게 요청하시고 원 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민감하게 알고 순종하는 삶이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분량에 따라 주님은 우리에게 어려운 과제와 헌신을 요청하실 수도 있습 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강력하고 다이나믹한 변화의 삶을 요청하실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것까지도 순종할 때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문단(4:16-5:1)에서는 어떤 내용들이 흘러가고 있습니까?
먼저 중심단어를 알아보겠습니다.
1) 동산 - 3번
신부 - 4번
2) 일어라/불어라/ 불어 오너라/ 풍겨라 - 4번
3) 신랑 - 5번
4) 즐기게 하여라/ 향료를 거두고/ 꿀송이를 따 먹고/ 젖도 마셨다/ 먹어라/ 마셔라
흠뻑 취하여라 - 7번
중심단어를 통해 내용을 정리해 볼 때,
신랑과 신부가 마음껏 즐기고 사랑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신부는 자기 자신의 모든 것, 사랑, 향기, 온갖 과일, 순결...을 신랑을 위해 내어주고 신랑은 신부의 모든 것을 누리고 즐거워하는 모습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줄까요?
신랑과 신부가 마음껏 즐기고 사랑하듯이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신랑되신 그리스도와 마음껏 즐기고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 함을 알게 됩니다.

여러분의 삶은 어떤 모습입니까?
매일 신랑되신 그리스도와 이렇게 사랑하며 즐거워하는 삶을 살고 계십니까?

그러면 각 문단의 메시지를 정리해 본 다음에 적용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1문단 (3:6-3:11) 결혼을 하기 위해 신랑이 등장하고 있다.
적용- 주님과 진실로 결혼했는가?(당신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인가?)
2문단
전반부(4:1-7) 신랑은 신부의 아름다운 외모에 감탄하고 있다.
적용 - 나를 향한 주님의 사랑을 깨닫고 있는가?
후반부(4:8-15) 신랑은 신부의 사랑과 향기와 순결 때문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다.
적용 - 주님을 즐겁게 해 드리는 삶을 살고 있는가?
3문단 (4:16-5:1) 신랑과 신부가 마음껏 즐기고 사랑하고 있다.
적용 -주님과 항상 사랑의 교제 가운데 있는가?

전체 제목은 신랑과 신부의 사랑이라고 정해 보았습니다.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1) 나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인가?

2) 나는 주님을 즐겁게 해 드리는 삶을 살고 있는가?

3) 나는 주님과 사랑이 교제 가운데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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