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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일기 - 빛과 소금 20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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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랑방 작성일04-09-18 17:23 조회2,14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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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된 곳: 빛과 소금 2001. 2. 1

성서일기, 영혼이 자랍니다.

성도들이 성경을 매일 한 장씩 읽고 성서일기를 쓴다고 들었습니다. 1984년 사랑방교회가 시작된 이후 계속해 오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성경을 몇 번째 성서일기로 쓰고 계신가요?
처음엔 하루 한 장씩이 아니었을 겁니다. 어느 시기부터 그렇게 시작했는데 올해가 성경을 다섯 번째 읽고 쓰고 묵상해 온 해일 겁니다. 오늘 차례는 예레미야 21장 이었습니다.

‘성서일기’, 진정한 변화 일어난다.

어린이들도 성서일기를 쓰나요.
어린이들도 초기부터 어른들과 거의 같이 시작했어요. 왜냐하면 이것은 단순히 성경공부에 의미가 있는게 아니고 , ‘일기’라고 이름지은 것처럼 생활의 일부거든요. 성경을 대하는 우리 교회의 라이프 스타일을 만드는 일이기 때문에 교회를 시작하기 전부터 준비된 일입니다.
우리 교회는 조직이 단순 단일화되어 있어요. 보통 교회 생활을 위한 조직은 구역, 교회학교, 성가대, 남녀 선교회 이런 것들이 기본인데, 우리는 그런게 하나도 없어요. 사랑방 성서모임으로 단순화, 단일화되어 이지요.
교회 생활에서 꼭 필요한 다섯 가지 즉 옙, 친교, 교육, 봉사, 선교를 하나로 통일시킨 셈이에요. 사랑방성서모임으로 모여서 찬양하고, 마름나누고, 교제하고, 교육하고, 봉사하고 그러지요. 예배와 선교는 교회 전체적으로 하는 것이고요.
사랑방성서모임이 이 다섯가지 요소를 다 가지고 있는 교회 안의 작은 교회인 셈입니다. 어른은 평일 저녁에 모여서 저녁도 같이 먹고 찬양도 하고 성서일기 쓴 것을 함께 나눕니다. 어린이들은 주일에 교회학교에서 나누고요.

성서일기를 시작한 이유는 무엇인지요?
첫째로 성경에 대해 올바른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어느 공동체나 성경공부 방법이 그 모임의 라이프스타일을 결정한다고 보았기 때문이고요.

성경에 어떻게 접근해야 올바른 접근입니까?
첫째로 tdrud을 부분이 아닌 전체로 보아야 합니다. 좋아하는 말씀을 주관적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성경 전체를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둘째는 지속적으로 읽는 것입니다. 성경을 계속 읽어야 크리스천이죠. 살아가면서 자기 경험이나 세상의 방법을 따르지 않으려면 계속 말씀을 읽어야 하거든요. 그래서 일기라는 말도 나온 거예요. 매일매일 말씀을 대한다는 의미에서요.
셋째는, 읽되 스스로 읽으면서 말씀을 깨달을수 잇어야 합니다. 한국 교회가 읽는 것까지는 잘해요. 다독, 통독 다 잘하는데, 메시지를 직접 듣는 훈련이 안 돼 있어요. 그래서 누가 설명해 주고, 강의해 주는 것을 듣기만 하는 피동적인 습관이 들어 있어요. 그래서 말씀을 스스로 깨달을 수 있는 훈련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 거죠.
넷째는 삶으로의 연결 즉 적용이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말씀이 “나의 말씀”으로 생활 속에 영향을 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는데, 그게 성경공부 방법 중에 <‘상황’(context)에서 ‘문맥’(text)으로, ‘문맥’(text)에서 ‘상황’(context)으로>라는 원리에 따른 것이거든요. 삶의 필요에 따라서 말씀을 들어야 되고, 그 말씀을 듣고 다시 들은 것을 삶에 적ㅇ요하고 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다섯째는 문단 나누기, 문단 주제 적기, 문단 내용 적기 등을 통해 말씀을 객관적으로 과학적으로 정리해서 거기에서 메시지를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말씀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고, “말씀이 주는 메시지”를 들어야 한다는 것이죠.

성경공부 방식과 삶의 스타일은 왜 결정적인 관계입니까?
성경을 독단적으로 가르치는 것과 말씀을 같이 나누는 공동 성경연구 방식은 전혀 다른 삶의 스타일을 가져옵니다. 각자 듣고 적용한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공동체에서는 독단이 없어집니다. 그게 굉장히 중요해요.
성경을 보거나 교회사를 보면 언제나 말씀에 의해서 개혁이 일어났거든요. 개혁의 원동력은 말씀입니다. 그런 것처럼, 말씀에 따라 신앙이나 라이프 스타일이 결정됩니다. 말씀을 스스로 적용해 보고 나누는 데서 진정한 변화가 일어나죠.

스스로 성경 읽는 교인, 건강하다

‘공동 성서연구’라는 차원에서 사랑방성서모임에 대해 좀더 자세히 말씀해 주시죠. 외견상으로는 구역모임 같은데요?
일주일에 한 번씩 자기가 소속된 그룹에 가서 성경공부 모임을 갖는 것이죠. 다른 성경공부 같은 형식이 아니고 작은 공동체로서 자기의 삶을 나누는 것입니다. 성서일기의 첫 번째 목적이 개인이 쓰고 적용하는 것이라면, 두 번째 목적은 말씀을 공동으로 나누고 증언하는 데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공동 성서일기’인 셈이죠. 지도자가 일방적으로 가르치지 않고 나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순서는 같이 모여서 식사하고, 찬양을 30분 이상 하고, 각자 자기가 성경을 읽고 써 온 것들을 나눕니다. 그 다음에 세 가지 기도 제목, 말씀에 대한 응답과 소그룹에 주어진 봉사 과제, 교회 공동체를 위한 기도로 끝나죠. 보통 저녁 8시에 시작하는데, 빠르면 11시, 어떤 때는 12시를 넘기는 경우도 있어요.

성서일기를 쓰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죠?
처음 쓰시는 분들은 1시간씩 걸리는 경우도 있어요. 교역자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짧게 걸려야 30분, 보통 30분에서 1시간 걸리죠. 수요 기도회 시간에는 성서일기를 처음하시는 분도 있고 하니까 제가 그날 성서일기를 나눕니다. 익숙하지 않은 분들에게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드리는 거죠. 그걸 준비하는데 1시간 이상 걸려요.

처음 오신 분들이 성서일기에 적응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어려워요. 특히 신앙생활을 처음 하시는 분들은 성경을 읽는 것 자체가 다른 나라 말을 읽는 것 같으니까 쉽지 않고요. 지적 훈련이 부족한 경우나 신앙생활을 오래했어도 계속 듣기만 했던 분들은 어렵습니다. 빨리 하는 이들은 교회 나와서 생활한 지 1년쯤 되면 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런데 보통은 2~3년 지나야 해요.
그래서 성서일기를 쓰라고 강요하지 않습니다. 따로 모아서 교육시키지도 않아요. 자연스럽게 모임에 참석하다가 쓰게 되는 거죠. 처음에는 그냥 참석만 하라고 그래요. 그 다음에는 읽고 줄만 쳐 오라고 그러죠. 그런데 읽게 되면 거의 시작을 해요. 왜냐하면 우리 모임이 읽고 써 오지 않으면 와서 얘기를 못하거든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한 장이라도 읽어오게 돼요.

교회 교육면에서 다른 성경 공부 프로그램이 일체 없고 성서일기 하나로 단일화되어 있는데 후회는 없으십니까?
지금까지의 결과로 봐서는 조금도 후회는 없어요. 완전히 만적할 만큼은 아니라고 해도요. 그 이유는 일단 신앙이 다들 건강하다는 거예요. 신앙이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건강해요. 전체적인 것들을 보고 있으니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성경을 스스로 읽고 말씀을 들으니까 신앙이 매우 자율적이죠. 의타적이지 않죠. 우리 교회의 특징입니다. 그래서 지도자가 일방적인 것을 아주 싫어해요. 개인이 성경을 읽고, 모임에서 나누며 힘을 얻고 하니까 지금은 개인적인 심방, 정기적인 심방, 상담 이런 것들이 거의 없어요.

말씀 충만이 성령 충만이다

대부분 교회 교육이 가르치는 형태로 이루어지는 데 비해 성경을 스스로 체계적으로 정리하면서 정확하게 메시지를 듣고자 하는 말하자면 ‘거꾸로 하는 훈련’인 셈이군요.
우리가 보통 성경공부라고 하면 우선 커리큘럼이 있죠. 그것이 책이건, 교과 과정이건, 어떤 틀이 먼저 만들어지고 틀의 범위 내에서 가르치는 건데, 쉽게 말하면 틀 속에 잡아넣는 것이죠. 공과책이 그렇고 성경공부 교재들이 대부분 마찬가지예요. 어떤 틀을 만들고 그 틀에 맞추는 것이죠. 성경공부의 진짜 텍스트는 성경인데, 성경을 공부하는 것이 아니고, 참고서를 공부는게 됩니다. 그건 말씀을 그만큼 제한시킨다는 것이지요. 거기에 매우 큰 문제가 있어요.
이런 연역적인 접근은 교리, 주제별 성경공부에는 좋아요. 그러나 성경 자체를 공부하는 것, 성경을 스스로 보게 하기 위한 성경공부에서는 본문 즉 성경 자체를 어떻게 보게 하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에 귀납적으로 훈련해야죠.
초신자들에게는 상당히 어려운 일입니다. 시간도 많이 걸리고요. 사람은 아무래도 자기가 해오던 일이 편하고 쉽거든요. 그런데 안 하던 것을 새롭게 하는 것, 그것도 같은 내용인데 방법을 다르게 한다는 것이 굉장히 힘들어요. “왜 쉬운 방법이 있는데 그렇게 하냐?”는 거죠. 그래서 그 체질을 바꾸는 데 시간이 걸려요. 그런데 어느 단계가 지나가면 더 이상 좋은 방법이 없어요. 굉장히 효과적이고요. 다른 성경공부 교재들은 보기 싫어하죠.

그 ‘어느 단계’에 이르기까지 1~3년이 걸리는 것이군요. 오래 기다리셔야 되네요.
기다리지 못하는 것이 큰 문제예요. 단기간 내에 개인의 신앙 성장이나 교회 성장을 기대한다면 이렇게 할 수 없죠. 성경공부를 통해서 양적 성장을 시키기 원한다면 이렇게 못해요.

그런데 성서일기 자체가 너무 지적인 접근은 아닌지요? 하나님과의 만남은 신비적인 면도 있는데요?
얼른 생각하면 그렇지만, 그게 그렇지가 않게 되요. 오히려 말씀이 모든 것의 원천이고 바탕이고 기준이죠. 말씀이 충만해 있을 때, 신비한 경험을 하는 겁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감정적으로 흐를 수도 있고, 또 실제로 하나님에 대한 경험이라고 해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서 위험한 경우도 볼 수 있지요. 그래서 원래 성령을 말씀과 동일시해서 보고 있거든요. 오히려 마름을 통해 준비를 하고, 마름을 통해 지탱하고, 정리하는 거죠.
제가 여러 교회에 있어 봤어요. 아주 차가운 교회에도, 펄펄 뛰는 교회에도요. 차가운 경우는 설교에만 의존하고 있다거나, 개인이 말씀에 부딪치는 것이 없이 지도자에게 일방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경우입니다. 펄펄 끓기만 하는 교회는 참 허화돼요. 그런 교회가 제일 문제가 많고, 질서도 없고, 싸우고, 갈라지고 그래요. 이건 결국 말씀에 의해서 신앙이 내면화, 체계화되어 있지 않아서 그래요. 말씀과 삶이 아무 관계가 없으니까요.

성서일기를 쓰면서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우리 안에 욕심은 어떻게 말씀으로 다스려지나요?
확신은 자기 확신과 말씀에 의한 확신 두 가지가 있죠. 자기 확신은 주관적으로 끝날 수 있습니다. 기억력의 한계도 있고요. 시간이 지나면 생각은 변하죠. 하지만 말씀에 근거한 확인은 자기 확신보다 오래갑니다.
그리고 욕심 문제는 작게 말해 욕심을 극복하는 것이고, 크게 얘기하면 자기를 부정하는 것인데, 그거야말로 말씀에 의해 이루어질 때 힘이 되죠. 욕심 문제가 내 의지에 의해서나 다른 사람에 의해서 극복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요. 다른 사람이 권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권했을 때, 힘이 되죠.
내 욕심을 내가 죽인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반복하지만 언제나 말씀은 모든 것의 원천이고 기준이고 바탕입니다. 그 힘이 더 강하면 욕심을 잘 다스릴 수 있는 힘이 되는 것이죠. 말씀의 생명력과 능력에 대한 확신을 경험하게 되면 더 말씀에 친근하게 여기고 힘들어도 자꾸 읽으려고 하게 됩니다.

일반적인 ‘큐터’와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큐티’라고 하는 것은 묵상에 초점이 있다고 보거든요. 부분적으로 보기도 하고요. 그런데 성서일기는 철저하게 귀납적인 거예요.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관찰하고 분석을 먼저 하고 그런다음 메시지를 듣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그냥 묵상해서 깨달을 때보다 메시지가 더 강할 수가 있습니다.
메시지가 더 강하면 적용하는 것, 실천하는 것도 더 강한 거죠. 우리 교인들이 나눌 때 보면 서로 웃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들어보면 마름이 그만큼 삶 속에 깊이 들어가서 나오는 이야기들이 많아요.

많은 분들이 성경을 대하지만, 사실 ‘말씀대로 산다’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언제나 큰 원칙이 먼저 있고 그 원칙 아래에서 구체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구원받은 자녀로서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요? 저는 ‘기쁨과 자유함 가운데 있는 것’을 큰 원칙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이 큰 원칙 속에서 ‘말씀대로 잘자’는 작은 목표가 있는데 완벽하게 그렇게 살 수는 없어요. 거기에 갈등이 있는 거죠. 그럴 경우 지금 내 분량 아래에서 나의 최선을 다했으면 되는 거예요. 내가 최선을 다했으면 그것으로 겸손히 자유하고 기뻐하는 것이지요. 그럴 수 있으면 그게 바로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것이라고 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자신을 죽여서 자유케 하신 그 자유를 누리는 것입니다.

말씀과 부딪쳐 그 안에 임해야

성서일기를 써 온 교인들이 세상 속에 들어가서도 말씀대로 산다고 보시나요?
제가 일일이 쫓아다닌 것은 아닙니다만, 저는 교인들을 굉장히 자랑하고 싶어요. 일단 가까이서 느낄 수 있는 것은 그래도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 공존하려는 모습이 교회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일터에서도 가능한 한 교회 생활 방법을 그대로 하려고 하는 모습을 느껴요. 그러니까 손해보고 돈도 많이 못 벌고 그러죠. 교인들끼리 대화를 들어 보면 “그래도 사랑방교회 교인인데 그렇게 할 수 있겠냐?”고 하곤 하죠. 교인들 중에는 환경 관련 사업과 같은 건전한 직업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결국 교인들이 그렇게 성숙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토대가 설교가 아닌 성서일기에 있다고 보시나요?
설교는 정리하고 보완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하는 성서일기가 주된 것이죠. 성경이 우리 신앙의 표준이고, 말씀에 의해서 교회가 변화되고 개혁될 수 있습니다. 우리 교인이나 한국 교회에 있어서 스스로 하고 나누는 ‘성경공부’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이런 성경공부를 계속해 온 지 17년이나 되었지만, 한국 교회는 여전히 변한 것이 없어요. 교회마다 틀에 잡힌 것들만 하면서 만족하는 분위기인 것 같아요.

교인들에게 권하는 성경이 있나요?
요즘 나오는 주석이 있는 성경은 가급적 피하라고 합니다. 그냥 본문만 있거나 관주만 있는 성경을 권하죠. 주석해 놓은 것은 그 사람의 생각이니까 그 사람의 생각에 잡혀 있을 수 있거든요. 그리고 가능하면 다른 번역서들을 비교해서 보라고 합니다. 새번역이나 공동번역이나 외국어 성경을 비교해서 보라고 하지요. 원래 성서일기는 주석 보면서 쓰면 안되는 것이거든요. 그래도 꼭 주석을 보고 싶어하면 박창환 목사님이 쓴 「성서주해」를 보라고 하죠. 쉽고 객관적으로 쓰여진 책이거든요. 신학적인 책은 일부러 소개를 안 합니다. 성서일기를 자꾸 학문적으로 쓰면 어렵죠. 그냥 있는 그대로 말씀을 만나는 거예요. 그래서 일기예요.

마지막으로 한국 교회에 하시고 싶은 말씀은?
우리 사회가 많이 발전되었습니다. 국민들의 수준이 높아지고 다양화되어 있는데, 교회가 계속 자기 도취적인 면에서 자기를 주장하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설득력이 없고, 선교도 막힐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교회로서 권위를 가지고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죠. 원래 교회의 모습을 되찾으면 되는 거예요. 그건 세상에서 흉내낼 수 없고, 비판할 수 없는 것이 아닙니까. 거기서 힘이 나오는 것이죠. 교회가 교회의 모습을 갖추는 것, 그것이 선교이고 모든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서 성경공부가 중요하다는 것이죠. 성경에 참된 교회의 근거가 있고, 참된 교회는 성경에 의해서 가능합니다. 성경을 교인 길들이기나 자기 사람 만들기의 개념에서 가르치면 안되겠죠. 말씀 자체가 그 사람과 부딪혀서 말씀이 그 사람 안에 임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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